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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경험/책

[책 추천] 데미안 - 그럴 때 넌 너 자신 속으로 귀를 기울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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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Demian)1919년 초판 표지ⓒ Aleister26/wikipedia CC BY-SA 4.0 

 

 

 

성장소설이자, 헤르만 헤세의 자전전 소설인 [데미안]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굵직하게 두드린다. 시대를 뛰어 넘어 현재에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같은 카테코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데미안]을 읽는 내내 헤르만 헤세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는데 마치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성장을 같이 보며 자라난 형제 같았다.

 

 

열 살 소년 싱클레어가 20대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로 친구 데미안과 만난 후
자신의 무의식과 내면을 일깨우는 과정이 철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daum 백과-

 

 

 

줄거리는 위에 글로 함축 될 것 같다. [데미안]을 읽기 전에는 워낙에 유명한 책이고 인생소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사람들에 휩쓸려 막연히 이 책을 찬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 본질에 대해서 탐구한 그의 글들 속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에 이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데미안 속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모습일 것들에 대해서 몇 가지만 나열해보겠다.

 

 

 

 

 


내 본성은 가능한 한 빨리 이전의 균형과 평온함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 많은 추한 것들, 위협적인 것들을 떨쳐 내고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내 죄와 두려움의 그 긴 이야기 전체가 놀라울 정도로 빨리 기억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어떤 상흔도 인상도 남기지 않은 채.




제 1장 두 세계에서 10대 시절의 싱클레어는, 크로머라는 어두운 세계를 만나 인생 첫 고비를 맞지만 데미안을 통해 가까스로 구원받는다. (물론, 싱클레어는 데미안 역시 또 다른 유혹자라고 표현한다.) 다시금 밝은 세계로 돌아온 듯하지만 싱클레어의 속에서는 이전과 다른 균열이 가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던 10대의 싱클레어는 성인이 되어서도 데미안 앞에서 크로머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주저한다. 

 

회피와, 도망침. 살다보니 떠올리는 것 자체로도 속이 오그라드는 것 같고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문제가 있었다.  아마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그 어두운 이면을 똑바로 마주보기까지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당장의 회피와 도망침이 무조건 잘못 된거야! 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의 본성은 균형과 평온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존본능이 있기 때문에 행복했던 과거로의 회기라던지, 현실로의 도피라던지는 아주 자연스러운것이다. 

 

나는 자주 도망을 치며 미루고 미루다가 곧잘 죽상을 잘 짓는다. 겉으로도 상흔과 인상이 분명히 보인다는 점에서 싱클레어와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내 주변에서는 가끔, 힘든 모습을 숨기고 억누르는 친구들을 많이 본다. 그 친구들은 겉으로는 무척이나 밝은 세계에 있는 듯하지만 실상 그 속은 심연의 바다이다. 짙은 보라빛의 깜깜한 바닷속으로 가라 앉은 그 친구들은 깊은 소용돌이에 몸을 맡겨 버린 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지 않고 회피하다 보면 외부에서 비추는 작은 불빛에도 깜짝 놀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조금 더 일찍 크로머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영혼이 충분히 저지를 수 있던 그 어두운 유혹에 댓가가 꽤나 컸다고 본다. 작은 눈덩이도 굴리고 굴리다보면 몸집이 커지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구르고 구른 작은 불안의 씨앗은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스스로를 짓누르고 짓누른다. 나를 위협하는 것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게 나를 집어 삼키지 못하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밖으로 집어 던져버리는 것이다.

 

 


  - 세상에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내키지 않는 일이 없다는 것을!
- 나를 추스르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일이었다.



 

 

집어 던질 수 있도록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지만 결국엔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고 온전히 자기 자신의 일이다. [데미안]은 지독하게도 자아를 향해서 파고든다. 이런 글을 헤세가 쓸 수 있던 이유가 아래 글에 있다고 본다. 

 

"헤세의 소설 중 가장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융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심층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본인이 정신분석을 받았을 때의 경험을 토대로 ‘진정한 자아의 표상’으로서 데미안을 창조했으며, 이 소설 자체가 데미안이 되어가는 싱클레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daum 백과' " 

 

융 심리학은 흔히들 아는 페르소나, 아니마(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성의 여성적 측면), 아니무스(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남성적 측면), 그림자, 집단 무의식 등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깊게 들어갈만한 전문적 지식이 얕아 잘 모르겠으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따라 영혼의 힘들을 한데 모아 에바부인을 통해 자아를 느끼고 실현하는 표현은 꽤 인상깊다.

 

 

 


 나는 서서, 손가락과 발끝에서부터 차가워 올 때까지 심신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내게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잠시 내 안에서 무언가 밝고도 차가운 것이 단단하고 밀도 있게 뭉치더니 한순간 가슴에 수정을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왔다. 그것이 내 자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가움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데미안]은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지만 어렵게 읽히는 책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내가 느껴지는 대로만 이해하면 되는 책이다. 가끔 내가 나를 알다가도 모를 때가 있지 않은가. 나를 보듯이 그렇게 읽어보면 되는 책이다. 이 책을 다 보고나서 만난 나의 자아상은 '우주를 품을 수도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날개를 잠시 웅크리고 있는 새'였다.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던데 나를 품는 것 역시 우주를 품는 거라 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어야 한다.


그럴 때 넌 너 자신 속으로 귀를 기울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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